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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는 아닌 그저 내가 먼저. 본문

판형은.152mm✕225mm

프롤로그는 아닌 그저 내가 먼저.

niceplanner 2016. 4. 27. 03:11

 오늘은 하루를 두통으로 시작했던 날.

 억지로 바나나를 하나 갈아마시고 나서 머리가 아프지 않기를 기다려 책을 펴다가 스마트폰 만지작거리며 잠시 수다도 하다가, 노래도 듣다가 그러다가 창문도 열어보다가, 쌓여있는 설거지를 갑자기 하고,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가 떠올라서 드문드문 보기 시작했다가 어느 장면부터는 끝까지 봐야겠어서 1시 약속으로 나갈 준비를 하던 중에도 스마트폰을 한 손에는 놓지를 못하다가 그 약속이 만나기로 한 시간의 불과 13분 전에 깨어져버린 바람에 옷을 갈아입다 말고 나는 잠시 앉아서 이제 뭘하지, 했었습니다.


비가 왔었구나

날이 차구나

계속 비가 오려나

그럼 더 추워지려나


 얼마간 헛헛했던 마음을 뒤로하고 이번 주안에 읽어야 하는 책을 펴서 읽고 있는데 갑자기 뭔가 허무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바라던 대로 살게 되었음에도 문득 어느 때엔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건지 계속해서 생각할 때가 있는데 오늘은 그 생각 끝에 잠깐 눈물이 나기도 했습니다.


 아-, 누군가와 얘기가 나누고 싶다, 그런데 곧 한국은 밤이 되는구나, 깜깜한 밤, 그럼 이제 나는 여기 먼 곳에 한국과는 닿을 수 없는 시간 안에 있게 되는구나.


 흐를 새 없이 눈물을 서둘러 닦고 자리를 고쳐 앉았습니다. 읽던 책을 마저 읽자, 그래야 잠잠해진다, 나는 손에 놓인 책을 더욱 당겨잡으며 허전함 대신 내 마음에 채워질 무언가를 행간에서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당신이 등장합니다. 누군가와 얘기 나누고 싶다는 바램이 꺼진 자리에 당신의 인사 창이 떠오른 것입니다. 순간 신기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당신이 있는 곳에서는 자정이 훨씬 넘을 때까지, 그리고 내가 있는 곳, 여기에서는 깊은 오후가 되기까지 얘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내 안부를 궁금해하는 인사를 시작으로 잠시 서로의 근황을 나누다가 마실 맥주에 대해서, 다녀간 그리고 가고 싶은 여행지에 대해서, 제시와 셀린의 재회에 대해서도, 그리고 봉골레 파스타 정도는 맛있게 만든다는 얘기, 읽자마자 기가막히는 기획서에 대한 얘기, 배송 받아놓고 풀어보지도 못한 책 얘기, 그러다가 세익스피어 희극 템페스트와 십이야, 결혼행진곡 두 곡의 작곡가에 대한 얘기, 이어서 읽기로 한 스토너를 아직 못 읽었다는 고백에 바이마르에는 꼭 가야 한다는 다짐을 나누다가 마지막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카테고리를 낳았죠.


 판형은.252mmX225mm


 대화 중에, 한 여름밤의 꿈에,라는 연극 클립을 당신은 찾아내지 못했지만 SSG로 시작된 얘기로부터 그 커머셜 광고의 모티브인 에드워드 호퍼 그림을 혼자 생각하다가 지금 글을 쓰는 동안에는 언젠가 매우 자주 들었던 곡 하나를 나는 생각해냈습니다.

 

 꼭 들었어야 했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 대화를 나눈 것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이 곡을 다시 생각해내어 무척 나는 고맙습니다.


 the moon, the stars and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