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보리다이어리
2014.05.22 본문
1.
배낭 세개가 전부.
1년 6개월을 계획 중이시라는 세계일주에
배낭 세개가 전부인 것이다
아빠, 엄마보다도 훨씬 커진 아들이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될까
2.
사진을 찍어드려야겠다는 생각은 또 어디서부터 나온 건지.
망설임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가족의 자리에 불청객이 될 수도 있고
분주한 마음에 괜한 짐이 될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난
형에게 물어봤다
출국의 모습을 남기고 싶은데 그냥 참을까? 너무 나 오지랖일까?
3.
"사진찍어놓으면 아마 큰~추억은 될거야
공항사진은 뭐든 느낌이 오래 남긴 해
좋아라 하시겠지
오지랖이라기보단..기자정신 정도? 소식통 정도가 무난하겠네
자 그럼 내일 공항가서 사진찍어서 올리는걸로
그사진은 기대하지"
원래 어릴 때부터 스피릿 자체에
데스크와 맞서 싸울만큼의 똘끼가 있었다는
농담이 그 형을 데스크에 계신 분으로까지 만들었고
결론은 그 형은 책상임이 되었다ㅋㅋ
책상임이 사진 찍어오라고 했으니 기자가 출동하는 거라며,
용기를 얻어서 선생님께 간다고 말씀 드리고 반차도 냈다
4.
사진찍는 것 만으로도 두근거리면서 설레는데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막막하기도 했다
레퍼런스 사진을 찾아보며 막막함을 달래는 중에
김성윤 선배가 생각이 났다!
당분간 마지막이니까 그 마지막으로 그분들에게서 보고자 하는 모습을 마음에 그리고 그 순간을 찍길 바래.
그분들도 예쁘게 잘나온 가족사진 보다 과감히 떠나는 당신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너의 마음을 원하실테니까.
구체적인질문에 어리석은 답이라 미안하지만, "진심이면 충분하다"는게 내 대답이라고 생각해주길 바랍니다. ^^"
2014년 5월 22일 오전 12:12
5.
서울역 체크인 하는 장소를 인터넷 서핑으로 찾아보며 장소를 익혀둔다
엘리베이터를 내리면서 여기서부터 찍어야하나 고민도 했다
그 모든 것이 나 스스로도 자연스러웠다
"넌 기자가 어울리긴 해"라는 책상임의 말씀처럼 ㅋㅋ구도나 상황을 상상하며 두 시간 넉넉히 미리 도착했다
이번주 과제, 캘리그라피 연습이나 하면서 기다리자,했으나
한 시간 이상은 글씨쓰기가 힘들었다
너무 설레고 두근 거렸다
기대감으로 심장이 이렇게 뛰었던 적이 언제였나
내가 사진을 잘 찍을 수 있을까
왜 사진 찍어드리겠다고 설레발을 첬을까, 너 그렇게 자신 있었나,라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내 심장이 두근 거리는 것을 정말 오랜만에 느끼며 나머지, 한 시간을 넘게
그 곳에서 선생님을 기다렸다
6.
"진심이면 충분, 그 순간을 찍길 바란다"라는 성윤선배의 조언 때문일까,
어떤 포즈를 잡아내기보단 상황 그 자체를 조용히 찍었다
내게 허락된 시간은 약 15분 정도.
7.
체크인도 하셔야 하고
아빠, 장인어른, 외할아버지에게 인사도 드려야 하고
그런 모든 상황에서 나도 안부인사 전해드려야했고
무엇보다 세 가족에게 방해가 되지 말아야했다
8.
먼길 떠나는 가족의 모습은 설렘과 기대로 한껏 부풀어있을 거라는 내 생각과는 달랐다
뭔가 굉장히 분주하셨다
아빠, 장인어른, 외할아버지와의 당분간의 작별인사가 서운하여 분주함으로 감추셨을까
나라는 사람의 등장까지 더해져 어쩌면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 때문에 어색하셨을지도 모르겠다 ㅋㅋ
9.
선생님은 이런 여행이 처음이라고 하셨다
그렇다
세 가족 모두 이렇게 떠나는 것이 처음이니
당분간의 작별인사도 처음이고,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나란 사람이 나타난 것도,
떠나는 순간도 설렘인지 기대인지의 감정도 처음이니 어색하셨을 것이다
10.
그 모든 상황이 느껴지는 시간, 떠나기 전 15분 정도.
11.
부지런히 셔터를 눌려도 모자란 틈에 선생님께서는
결혼보다는 좋은 남자를 만나라,
할거면 결혼은 2년 후에 해라라는 덕담을 잊지 않으시며 악수를 건내주셨다
바쁜 걸음을 함께 옮기는 중에 형란언니는
그 사이 좋은 사람 있으면 얼른 하는 것도 좋다고 하시는 바람에
우리 셋은 나란히 함께 웃기도 했었다
12.
나는 2014년 5월 22일 오후를,
용기를 내어, 사진을 찍어드리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선생님께 찍어드리겠다고 말씀드렸던 순간부터 실행에 옮기기까지
내 마음이 얼마큼 설렐 수 있고 심장이 두근 거릴 수 있는지를 다시한번 깨달은 날로 기억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내 가족과 여행할 것을 다짐했던 날이라고 기억하고 싶다
+ 노출, 초점, 구도 다 좋지 않은 ㅋㅋ
하지만 그냥 그 상황이 느껴지는 정도라고 해두자
당분간 사진 먼저 찍어드리겠다고 설레발치지 않을 것.